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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와 바이럴이 지배하는 K-팝, 우리의 귀는 알고리즘의 허락 없이 음악을 사랑할 수 있는가

노래가 좋아서 뜨는 것일까요, 아니면 떴기 때문에 좋은 노래로 들리는 것일까요? 올데이 프로젝트, A2O LITE, 리센느, 그리고 뉴진스의 사례를 통해 기획된 바이럴과 스토리텔링이 청각의 주권을 대체한 K-팝의 현주소를 산책자의 시선으로 짚어봅니다.

디지털 아케이드와 산책자의 시선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를 거닐던 발터 벤야민의 산책자(Flâneur)는 자본주의의 상품 물신이 전시장의 유리창 너머로 어떻게 대중을 최면에 걸고 군중을 형성하는지 한 걸음 물러서서 관찰하는 주체였다. 2026년 오늘날의 아케이드는 물리적 건축물이 아니라 유튜브 쇼츠(Shorts), 틱톡(TikTok), 인스타그램 릴스(Reels)로 이어지는 끝없는 수직 스크롤의 디지털 공간으로 이동했다. 대중은 알고리즘이 밀어 올리는 15초 내외의 파편화된 영상 속을 유영하며 즉각적인 도파민을 소비하지만, 같은 길을 천천히 걸으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구조적 이면을 응시하는 디지털 산책자의 시선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포착된다.

한국의 아이돌 산업은 오랫동안 10대 이전의 유년기부터 연습생을 선발해 하루 10시간 이상의 고강도 훈련과 합숙 속에 가두고, 가족 및 사회로부터 고립시킨 채 철저히 ‘시장 잠재력’을 가진 상품으로 주조해 왔다.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교육적 안전망이 부재한 상태에서 비전문 관리자의 통제와 가혹한 외모·체중 관리에 노출된 청소년들은 불면증과 무월경 등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부작용을 겪으며, 99.9%의 탈락자는 막대한 정산 부채와 경력 단절을 떠안고, 극소수의 데뷔자조차 대중의 과도한 시선 속에서 자아 정체성의 분열과 극심한 우울증을 앓다 끝내 비극적인 선택에 이르는 구조적 병리 현상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2025년과 2026년을 관통하는 K-팝 생태계는 이러한 전통적 육체 착취의 윤리적 한계를 표면적으로 우회하거나, 혹은 역으로 극단화하면서 동시에 ‘폭발적인 초기 바이럴‘과 ‘완성형 서사‘라는 강력한 플랫폼 공학을 결합하고 있다. 더블랙레이블의 성인 혼성 그룹 올데이 프로젝트(ALLDAY PROJECT, 이하 ADP), SM엔터테인먼트 축출 3년 만에 복귀한 이수만의 에이투오 라이트(A2O LITE), 그리고 유튜브 밈(Meme)을 통해 기적적인 역주행 신화를 쓴 리센느(RESCENE)는 각기 다른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그 기저에는 기획사가 설계한 포인트를 단기간에 대량 살포하여 대중의 인식을 강제 동기화하는 정교한 스펙터클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육체성의 착취에서 알고리즘의 투사로

최근 K-팝 시장의 지형도를 뒤흔든 세 그룹의 궤적을 비교하면, 아이돌 시스템이 미성년 노동과 정체성 혼란이라는 고질적 딜레마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해법이 어떻게 예외 없이 ‘알고리즘 기반의 집단 최면’으로 수렴되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2025–2026 K-팝의 세 가지 표상

분석 차원올데이 프로젝트 (ALLDAY PROJECT)에이투오 라이트 (A2O LITE)리센느 (RESCENE)
소속사 및 핵심 기획자더블랙레이블 (테디 총괄 프로듀싱)A2O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총괄, 유영진·써니 참여)더뮤즈엔터테인먼트 (버클리 음대 출신 경영·제작진)
데뷔 및 주요 분기점2025년 6월 데뷔 (2026년 9월 미니 2집 발매)2026년 10월 13일 데뷔 (이수만 경업금지 해제 직후)2024년 데뷔 / 2026년 5월 두 번째 역주행 폭발
멤버 구성 및 연령대만 21세 평균 (성인 5인조 다국적 혼성: 여 3, 남 2)만 15세 평균 (최연소 13세 3명 포함 9인조 다국적 걸그룹)중소 기획사 5인조 걸그룹 (리더 원이, 제나 등)
육체성 및 정체성 전략이미 완성된 성인 아티스트들의 결합으로 미성년 착취 프레임 탈피버츄얼을 버리고 갓 피어난 10대 초반의 ‘싱싱한 육체’에 고전적 기계 군무 이식무대 위 아이돌보다 친근한 로컬·서브컬처 캐릭터(거제 소녀, 갸루) 선행 구축
바이럴 확산 메커니즘재벌 외손녀·오디션 출신 등 화려한 스펙과 숏폼의 즉각적 대량 배포도입부 페어 터팅 안무 쇼츠, AI 패러디 영상 대량 양산, 4DGS 신기술 쇼케이스사투리(‘거제 야호’) 자체 콘텐츠 알고리즘 폭발 및 커뮤니티 ‘획득 미디어’ 전염
대중 여론 및 서사 프레임초기 ‘간지·트렌드’ 찬양 및 신인상 독식 후, 최근 댓글의 급격한 피로감·비판 전환중국 내 멤버 부모 임금체불 논란에도 불구, 국내는 ‘이수만의 뚝심·감다살’ 찬양 일색‘사람을 먼저 좋아하게 만든 천재적 브랜딩’ 찬양 및 뒤늦은 명곡 추앙, 아저씨 팬덤 결집

성인 혼성 그룹의 실험과 에이투오 라이트의 역설적 회귀

2025년 6월 23일 데뷔한 ADP는 외견상 한국 아이돌 시스템의 어두운 그림자였던 ‘유년기 인격의 상품화’에 대한 대안처럼 등장했다. 데뷔 기준 평균 연령 만 21세의 성인들로 구성된 이 5인조 혼성 그룹은 신세계그룹 이명희 총괄회장의 외손녀이자 컬럼비아대 합격 이력으로 화제를 모은 애니,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수이자 패션모델 출신인 타잔, 글로벌 댄서 베일리, <쇼미더머니> 출신 우찬, <알유넥스트> 출신 영서 등 이미 각자의 영역에서 정체성과 서사를 확립한 개인들의 결합을 표방했다. 미성숙한 자아를 기획사라는 틀에 구겨 넣는 대신, 완성된 성인 셀러브리티들의 ‘창조적 실험’을 내세움으로써 대중에게 윤리적 부채감 없는 세련된 소비(‘간지’)를 허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여 뒤인 2026년 10월, 이수만 프로듀서가 3년간의 국내 음반 제작 금지 약정을 끝내고 선보인 A2O LITE는 산업의 시계를 정반대 방향으로 되돌려 놓았다. 일흔이 넘은 노장 기획자는 과거 SM 시절 아이돌의 생물학적 노화와 활동 시한을 극복하겠다며 주창했던 메타버스와 아바타(에스파 등)라는 우회로를 스스로 걷어차고, 평균 나이 15세—심지어 만 13세 멤버가 3명이나 포함된—가장 어리고 싱싱한 육체를 전면에 내세웠다. 비평가 윤광은이 지적했듯, 이는 아이돌 산업의 본질이 결국 ‘인간의 젊음과 육체성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것’이라는 냉혹한 진실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아이찡과 시리가 태엽을 감은 기계처럼 수행하는 데뷔곡 〈NEON〉의 도입부 터팅(Tutting) 변형 페어 안무와 9명 전원의 오차 없는 칼군무, 음악방송 1위 앵콜 무대에서 증명된 보컬 실력은, 최근 2분대의 이지리스닝 음원과 느슨한 챌린지 안무에 피로감을 느끼던 대중에게 강렬한 쾌감을 선사하며 데뷔 일주일 만에 음악방송 3관왕이라는 폭발적 지표로 이어졌다. 기획자의 늙지 않는 욕망이 10대 초반 소녀들의 생물학적 육체를 ‘완벽하게 조련된 퍼포먼스 머신’으로 치환할 때, 대중은 미성년 대상화에 대한 윤리적 성찰 대신 ‘역시 원조의 귀환’이라는 카타르시스를 소비한다.

‘기획된 우연’의 메커니즘과 여론의 양극화

산책자의 시선이 머무는 가장 기묘한 지점은 이 그룹들이 대중의 시야에 진입하는 방식의 기시감이다. 대형 자본이 투입된 ADP와 A2O LITE는 물론이거니와, 자발적 입소문(Earned Media)의 승리로 포장되는 리센느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K-팝의 흥행은 음악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과정이 아니라 기획사가 의도한 특징과 포인트를 담은 방대한 양의 숏폼 영상이 단시간에 폭격처럼 투하되는 과정을 거친다.

제작자 신화(‘감다살’)라는 집단 최면과 스펙터클의 내면화

기 드보르(Guy Debord)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현대 사회의 스펙터클이란 단순한 이미지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라고 정의했다. 2026년 K-팝 소비자들이 보이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무대 위의 아티스트를 넘어 그 뒤의 설계자(프로듀서와 마케터)를 발견하고 찬양하는 데서 지적 우월감과 쾌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A2O LITE의 〈NEON〉 뮤직비디오와 AI 패러디 쇼츠가 알고리즘을 장악하자, 대중과 언론은 이수만이 보아와 동방신기 시절의 유영진 사운드를 복원해 밀어붙인 행보를 두고 유행을 좇지 않는 ‘뚝심’이자 ‘천재성’, 속칭 ‘감다살(감이 다 살아있다)‘이라며 일제히 경탄을 쏟아냈다. 심지어 핵심 멤버 아이찡의 모친이 과거 운영한 교육업체의 임금 체불 논란이 불거져 중국 내 여론이 악화되고 신상이 유포되는 실질적 윤리 리스크가 발생했음에도, 국내 플랫폼의 댓글 창은 오직 기획자의 완벽한 디렉팅과 멤버들의 실력에 대한 무결점 찬양으로만 채워진다. 리센느의 경우에도 리더 원이의 “거제 야호” 인사와 제나의 ‘신라공주·갸루’ 콘셉트가 개설 약 110일 만에 유튜브 구독자 30만 명을 돌파하며 역주행을 이끌자, 미디어와 대중은 이를 두고 “바이럴이 만든 우연이 아니라 캐릭터를 브랜드로 바꾼 천재적 전략의 성공"이라며 기획사의 설계 능력을 신격화한다.

이수만 프로듀서가 유영진과 손잡고 내놓은 ‘Zalpha Pop’의 대표작으로, 공개 3주 만에 3,600만 뷰를 돌파한 핵심 뮤직비디오입니다. 영상 도입부에서 아이찡과 시리가 태엽 감긴 기계처럼 수행하는 페어 터팅(Tutting) 안무는 물론, 댓글 창을 가득 메운 “소녀시대와 샤이니가 돌아온 것 같다”, “이수만의 감다살” 같은 제작자 찬양 여론(댓글 약 3만 개)을 가장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대중이 자신이 철저히 기획된 마케팅의 타깃이 되었음을 인지하면서도 오히려 그 기획의 치밀함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수용자들이 스스로를 단순한 ‘청자(Listener)‘가 아니라 자본과 알고리즘의 시선을 공유하는 ‘가상의 투자자’ 혹은 ‘마케팅 심사위원‘으로 위치시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계획된 것이었다"는 서사는 소비자에게 자신이 실패하지 않는 승리자의 시스템에 동승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부여한다. 결국 제작자를 ‘천재‘로 추앙하는 행위는 스펙터클에 포획된 수동적 관람자가 지배적 이미지와 시스템에 자기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소외를 잊으려는 현대적 물신숭배의 한 형태다.

올데이 프로젝트(ADP) 댓글 여론의 급변과 화제성의 유통기한

이러한 ‘찬양의 에코챔버’가 얼마나 취약하고 인공적인 모래성인지를 증명하는 사례가 바로 최근 ADP의 영상 댓글 창에서 목격되는 여론의 급격한 반전이다. 2025년 6월 싱글 〈Famous〉와 〈Wicked〉로 데뷔해 멜론뮤직어워즈 올해의 신인상, 마마 어워즈 브레이크스루 아티스트상, 2026년 제40회 골든디스크 신인상과 디지털 음원 본상까지 총 9개의 주요 트로피를 휩쓸며 “시대를 초월한 개념”, “차원이 다른 간지"라는 절대적 찬사를 받던 ADP는, 2026년 9월 말 두 번째 미니앨범(EP) 《CRASH》 컴백 기점을 전후해 갑작스럽게 “식상하다”, “실력이 기대 이하다"라는 식의 비판과 냉소적 댓글에 직면했다.

2026년 9월 말 발매된 미니 2집 타이틀곡 〈CRASH〉의 공식 퍼포먼스 영상(약 340만 뷰)입니다. 데뷔곡 〈Famous〉(약 980만 뷰) 당시의 폭발적인 초기 찬사와 비교하여, 두 번째 시즌에 접어들며 음악적 포맷의 반복과 댓글 여론의 온도 차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상승세를 타는 A2O LITE나 리센느의 공간에 오직 순수한 찬양만이 존재하는 것과 대비되는 이 현상은 두 가지 구조적 인과관계로 설명된다. 첫 번째 요인은 배경 서사(Spec) 선행 소비에 따른 도파민 내성이다. ADP는 데뷔와 동시에 ‘재벌 3세의 아이비리그 합격 스토리’, ‘한예종 무용수’, ‘유명 서바이벌 출신’이라는 강력한 외부 서사와 테디 특유의 힙합 비주얼을 숏폼으로 과잉 공급했다. 그러나 음악적 구조 자체의 혁신보다 캐릭터의 희소성과 ‘혼성 그룹’이라는 포맷의 신기효과에 기댄 바이럴은, 소비자가 그 설정에 익숙해지는 두 번째 시즌(《CRASH》)에 접어들면 급격한 한계효용 체감을 겪는다. 처음에 ‘트렌드를 스스로 만드는 파격’으로 포장되었던 보컬 없는 래핑 위주의 구성(유일한 보컬 포지션인 영서 외 전원 랩 포지션)이 반복될 때, 대중은 이를 더 이상 ‘실험’이 아닌 ‘단조로움’으로 재규정한다.

두 번째 요인은 바이럴 화력의 이동과 플랫폼 자정 작용(댓글 정화)의 비대칭성이다. K-팝의 유튜브·틱톡 댓글 창은 자연 발생한 공론장이 아니라, 초기 마케팅 물량과 코어 팬덤의 조직적인 ‘댓글 정화(긍정 댓글 추천 몰아주기 및 비판 댓글 밀어내기)‘가 지배하는 전시 공간이다. A2O LITE처럼 데뷔 직후 막대한 바이럴 에너지가 집중되거나 리센느처럼 ‘리센느빵’ 구매자의 남성 비율이 69%에 달하는 ‘아저씨 팬덤’ 및 신규 유입층이 결집해 상승 기류를 타는 시기에는 알고리즘과 팬덤의 방어막이 비판적 시선을 완벽히 차단한다. 반면 데뷔 1년이 지나 초기 바이럴 캠페인의 인위적 부양력이 빠진 그룹의 공간에는, 그동안 과잉 노출된 쇼츠 영상에 피로감을 느낀 일반 대중의 냉소와 새로운 자극(A2O LITE 등)으로 이동한 트래픽의 공백이 여과 없이 드러나게 된다.

아도르노의 ‘청각의 퇴행’으로 본 리센느 현상

산책자의 사유가 가장 깊숙이 침잠해야 할 대목은 리센느의 역주행을 둘러싼 ‘음악의 본질과 수용 순서의 전도(Inversion)‘다. 오늘날 리센느의 유튜브와 음원 사이트 댓글 창은 “결국 노래가 너무 좋아서 뜬 것”, “숨겨진 명곡이 빛을 봤다"는 찬사로 가득하다. 그러나 산책자는 진정으로 좋은 노래라면 비디오나 서사를 보지 않고 오직 귀로만 들었을 때도 즉각적인 관심과 호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들리지 않던 4.5점의 명곡, 밈(Meme)을 통해서야 열리게 된 대중의 귀

리센느의 타임라인을 추적하면 감각의 경로가 어떻게 역전되었는지 보여주는 대단히 역설적인 사실이 발견된다. 리센느의 소속사 더뮤즈엔터테인먼트는 버클리 음악대학 출신의 프로듀서와 경영진이 포진해 있으며, 역주행의 주역이 된 곡 〈LOVE ATTACK〉은 이미 2024년 9월 발매 당시 대중음악 웹진 이즘(IZM)으로부터 피프티피프티 이후 아이돌 그룹 최초로 평점 4.5점이라는 최고점을 부여받았고, 빌보드와 그래미닷컴 등 해외 매체로부터도 음악적 완성도를 극찬받았다.

즉, 음악적 실체(Audio)는 이미 2024년 가을에 완벽한 형태로 존재했으나, 당시 대중의 순수 청각 경로는 이 음원에 반응하지 않고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과거의 전통적인 음악 수용이 선율과 화성이라는 청각적 사용가치에서 출발해 직접적인 귀의 감동을 거쳐 아티스트에 대한 호감으로 확장되었다면, 2026년 K-팝의 수용은 정반대의 역전된 경로를 따른다. 대중이 이 노래를 ‘명곡’으로 인지하고 멜론 차트 1위로 밀어 올린 것은 발매 후 1년 반이 흐른 2026년 5월, 리더 원이의 경남 거제 사투리(“거제 야호”)와 제나의 갸루·신라공주 콘셉트 자체 제작 쇼츠가 알고리즘을 타고 폭발한 직후였다. 언론 보도가 정확히 짚어냈듯, 리센느는 노래보다 먼저 사람을 좋아하게 만들었고, 유튜브를 보고 멤버의 캐릭터에 몰입한 뒤에야 노래를 듣고 다시 콘텐츠를 소비하는 구조를 통해 성공했다. 심지어 거제시 홍보대사 위촉, 덕포해수욕장 인근 카드매출 134% 증가, 포토카드 수집 욕구를 자극한 ‘리센느빵’의 보완재 소비, 소속사 기업가치 74배 폭등이라는 일련의 사회적 전염(Social Contagion)과 바이럴 스펙터클이 먼저 대중의 인식을 장악한 후에야, 대중은 비로소 그 음악의 청각적 가치를 사후적으로 승인하고 ‘명곡’으로 추앙하기 시작했다.

자체 콘텐츠(『안원잘부』 등)에서 멤버들의 일상적인 사투리와 캐릭터 플레이가 어떻게 쇼츠 알고리즘을 타고 자발적 확산(획득 미디어)을 이끌어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바이럴 클립입니다.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청각의 퇴행’과 음악의 물신화

2024년의 귀에는 들리지 않던 4.5점짜리 음악이 2026년의 ‘거제 야호’ 영상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들리게 된 현상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가 제시한 ‘청각의 퇴행(Regression of Listening)‘과 ‘음악의 물신화(Fetishism in Music)’ 이론을 통해 가장 정교하게 해부될 수 있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후기 자본주의 문화산업 속에서 음악이 지닌 본래의 직접적 사용가치(Use-value, 음악 자체의 미학적 구조와 감각적 울림)는 완벽하게 추상적인 교환가치(Exchange-value, 사회적 인지도·화제성·상품으로서의 시장 가격)로 대체된다. 현대의 대중은 음악의 전체적 구조를 주체적으로 파악하며 듣는 능력을 상실하고, 끊임없이 파편화된 자극만을 쫓는 ‘정신분산적 듣기(산만한 듣기)‘의 상태에 머무른다. 아도르노는 이처럼 감각이 퇴행한 청취자들이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며, 계속해서 집요하고 고집스럽게 한 번 먹어보았던 익숙하거나 보증된 음식만을 요구한다"고 비판했다.

이를 2026년의 K-팝에 대입하면 세 그룹을 관통하는 퍼즐이 하나로 맞춰진다. 오늘날 대중의 퇴행한 청각은 아무리 훌륭한 화성과 멜로디를 가진 곡이라도 그것이 ‘순수한 소리’로만 다가올 때는 미학적 인식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귀가 열리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음악이 ‘사회적으로 높은 교환가치를 획득한 상품’이라는 시각적·서사적 보증서가 선행되어야 한다. A2O LITE의 경우에는 ‘이수만의 3년 만의 복귀작’이라는 거대 기획자 서사와 ‘태엽 기계 같은 칼군무 쇼츠’라는 시각적 충격이 그 보증서 역할을 수행했다. ALLDAY PROJECT의 경우에는 ‘테디의 프로듀싱’과 ‘신세계 외손녀·한예종 무용수’라는 계급적·문화적 후광이 초기 교환가치를 보증했으며, 리센느의 경우에는 ‘거제 소녀의 사투리 유행어’와 ‘중소 기획사의 눈물겨운 유튜브 역주행’이라는 관계적 서사와 밈의 네트워크 효과가 뒤늦게 그 보증서를 발급한 것이다.

칼럼을 위해 남겨두는 두 가지 질문

2026년의 K-팝은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정교하게 설계된 아케이드의 풍경을 보여준다. 10대 연습생의 정체성 마모와 비극적 소외라는 오래된 질문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성인 셀러브리티의 조립(ADP), 유년기 육체성의 기계적 부활(A2O LITE), 그리고 일상 캐릭터의 24시간 밈화(리센느)라는 더욱 세련된 바이럴 스펙터클 속으로 은폐되었을 뿐이다. 특정한 결론을 내리는 대신, 이 거대한 알고리즘의 거리에서 산책자가 독자들에게 건넬 수 있는 두 가지 성찰적 질문은 다음과 같다.

질문 1. 기획자의 ‘감다살’에 열광하는 시선은 아티스트의 성장을 목격하고 있는가, 아니면 더 완벽해진 상품화의 감옥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가?

과거의 아이돌 산업이 10대 청소년을 보이지 않는 연습실에 가두고 통제함으로써 정신적 공황과 자아의 소외를 낳았다면, 오늘날의 시스템은 그 기획의 작위성마저 ‘프로듀서의 천재성’과 ‘철저하게 계산된 브랜딩’이라는 이름으로 투명하게 전시한다. 대중이 A2O LITE의 평균 15세 소녀들이 수행하는 기계적 군무를 보며 이수만의 ‘감다살’을 찬양하고, 리센느의 일상이 밈으로 소비되는 구조를 보며 마케터의 기획력을 극찬할 때, 그리고 ADP의 초기 배경 서사가 소모되자마자 손쉽게 ‘식상함’이라는 판결을 내릴 때, 아티스트는 여전히 고유한 실존적 인간으로 호명되지 못한다. 소비자가 기획자의 시선에 동화되어 ‘설계의 완벽함’만을 추앙하고 한순간의 화제성으로 찬양과 냉소를 오가는 이 환경 속에서, 아이돌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은 과연 과거보다 줄어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중은 인간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인간을 재료로 빚어낸 자본의 치밀한 시나리오를 사랑하는가?

질문 2. 서사와 바이럴의 보증 없이는 4.5점짜리 노래조차 들리지 않는 시대, 현대인의 귀는 알고리즘의 허락 없이 음악을 사랑할 수 있는가?

좋은 음악은 시각적 정보나 배경지식이 제거된 어둠 속에서도 오직 소리의 파동만으로 인간의 감각을 흔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2024년에 발표된 리센느의 웰메이드 트랙이 대중의 귓가에 닿기까지는 1년 반이라는 시간과 수십만 뷰의 사투리 쇼츠, 갸루 분장, 그리고 지역 경제와 얽힌 밈의 폭발이라는 거대한 시각적·서사적 우회로가 필요했다. ‘누가 만들었는가’, ‘어떤 밈이 유행하는가’, ‘얼마나 폭발적인 조회수가 터졌는가’라는 알고리즘의 승인 도장이 찍히기 전까지는 아무리 뛰어난 곡이라도 침묵 속에 묻히고, 일단 바이럴에 성공하면 모두가 약속한 듯 ‘명곡’이라며 찬양의 대열에 합류하는 현상은 청각의 주권이 이미 기호와 스펙터클에 넘어갔음을 시사한다. 만약 오늘 밤, 그 어떤 기획자의 신화도, 쇼츠용 포인트 안무도, 감동적인 역주행의 스토리도 거세된 순수한 소리 하나가 디지털 아케이드에 흘러나온다면, 오늘날의 산책자와 군중은 과연 걸음을 멈추고 그 노래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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